이주은 개인전 

경박한 사회 

25.02.05-11 

갤러리라보 홍대 

[작가노트]

 <파충류의 뇌> 

술에 거나하게 취한 직장 상사로부터 진담인지 농담인지 모를 추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가? 달콤한 디저트를 한 입, 두 입 먹다 끊을 수 없어 빈 접시가 될 때까지 해치우고 나서도, 주체할 수 없는 식욕을 느낀 적이 있는가? 


 <파충류의 뇌> 는 술, 담배, 카페인, 게임, 도박, 음식..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수많은 자극이 난무하는 현대 사회에서, 이들에 중독된 나머지 본능적인 욕구를 통제하는 피질 (대뇌 겉질, cerebral cortex) 의 능력을 상실해버린- 즉, 파충류의 뇌만 남은 인간들에 대해 고찰하며 시작하게 된 작업이다. 


 파충류의 뇌 이론은 1960년대에 뇌과학자로 활동한 폴 맥린 (Paul Maclean) 이 최초로 정립하였다. 그는 인간의 뇌는 인지 및 언어, 사회성 등 고등한 기능을 담당하는 신피질 (neocortex), 안전에 대한 욕구, 공포 등의 감정을 느끼는 변연계 (limbic system) 를 포함한 포유류의 뇌 (mammalian brain), 그리고 가장 깊숙이 위치하며 생존에 필수적인 무의식- 이를테면 식욕, 성욕, 수면과 같은- 의 영역인 파충류의 뇌 (reptilian brain) — 총 3개의 층으로 이루어졌다고 주장했다. 


 한편 신경과학적으로 ‘중독’이란, 긍정적인 자극에 대한 보상회로가 고장나 통제력을 상실한 상태로, 보상회로를 작동시키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의 과다 분비와 연관되어 있다. 현대인의 소비 경향을 ‘도파밍’- 도파민과 파밍 (수집, farming) 의 합성 신조어- 라고 부르듯, 요즘 사회는 중독을 유발하는 활동만을 갈구하도록 유혹한다. 위의 개념들을 기반으로, 중독이 인간을 욕망의 노예로 추락시켜, 결국 신피질과 포유류의 뇌는 온데간데 없이 파충류의 뇌만 남아 현실을 살아가게 되는 모습을 회화로 구현하였다. 


 “한 병 더!”를 외치다 얼굴을 붉히며 스스로의 처지를 비관하는 우리. 파충류의 뇌만 남은 인간들은 때로는 즐겁지만, 때로는 공허하며, 때로는 자기파괴적이다가, 때로는 자기연민에 휩싸이곤 한다. 조절 기능을 상실한 인간의 모습이 다소 경박하게 느껴질 지 모르겠으나, 작업의 대부분은 자전적인 경험을 재현한 것으로 ‘비하’ 보다는 ‘공감’의 자세로 감상하길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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