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늬 그림책 개인전
가을이 오면
24.11.18-23
갤러리라보 홍대
[작가노트 ]
혹시 사랑하는 존재를 먼저 떠나보낸 경험이 있으신가요?
저는 2014년 가을, 갑작스럽게 작별 인사를 나누지도 못하고 엄마와 작별해야 했습니다. 그해에는 무력하고 눈물로 얼룩질 일들이 참 많았던 것 같아요. 그 이후로 마음에 자꾸만 가을이 찾아와요. 그 럴 때면 시시때때로 알사탕처럼 그 기억들을 하나씩 꺼내어 보게 되는데, 하나하나가 맛이 다 다르고 달콤씁쓸해요. 해가 지나도 어떤 장면들은 너무나도 선명해서 잊히지 않는데, 자주 꺼내보지 않았던 아주 작고 사소한 기억들은 또 희미해지는 것 같기도 해서 아쉬운 마음도 들고요. 그래서 “엄마의 어떤 모습들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어? 어떤 모습으로 기억하고 싶어?”라고 저 자신에게 자주 묻게 됐던 것 같아요.
그림책 <가을이 오면>은 엄마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나서 제가 경험했던 감정과 생각들을 바탕으로 소설화해서 구성한 이야기입니다. 사랑하는 존재가 세상에서 사라지고 나면 남겨진 존재에게는 여러 가지 다양한 감정이 휘몰아치죠. 슬픔, 그리움, 아련함, 분노, 원망, 미움, 당황스러움, 죄책감, 부정 등등의 감정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잠식해 오고, 이랬다저랬다를 반복하며 출렁입니다. 감정들은 마치 봄여름을 거쳐 자라나는 나뭇잎처럼 무성해지고, 울긋불긋 가을 단풍처럼 소란스럽다가도 때로는 마침내 겨울을 맞은 것처럼 잠잠해지기도 해요. 이렇게 자연 현상, 특히 가을이라는 작별의 계절과 상실의 감정을 접목해서 이야기를 통해 독자님들에게 위로와 응원을 건네고, 독자님들은 주인공들과 함께 가을을 보내면서 사라진 존재를 애도하고 상실을 다루는 힌트를 얻게 될 것이라 기대합니다.
만약 이 글을 읽는 독자님께서도 비슷한 경험을 하셨다면, 이 출렁임이 언제쯤이면 가라앉는지, 과연 끝이라는 게 있긴 한지 그런 의문들을 비슷하게 겪어오셨을 거라 생각해요. 아마도 평생 안고 가야겠죠. 완전히 말끔하게 사라지진 않을 거예요. 가을 안에서 우리가 우리의 감정을 의심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그대로 그 감정들을 껴안은 채로 다시 사랑으로 나아가는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어요. 작별의 계절을 보내고 있는 분들에게 든든한 보호막이 되어줄 갑옷 같은 선물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에요.
엄마가 돌아가신 뒤, 이렇게 짧은 인생이라면, 남들이 좋다는 거 말고, 내가 좋아하고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면서 시간을 채워가자고 결심했습니다. 비전공자라서 이제 와 그림을 배우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들어, 여러 길을 돌아왔는데 결국엔 이야기가 담긴 그림책을 만들고 싶었어요. SI 그림책 학교에서 스승 선경에게 그림을 배우고,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의 저자, 무루의 그림책 수업과 문장 수업에서 글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신신의 해옥과 동혁에게 디자인을 배우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재료들을 활용하여 그림을 그립니다. 변덕 부리는 가을과 같이 그때그때 쓰고 싶은 재료들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든 종이 조각들을 오려서 꼴라주를 하기도 하고, 판화 기법인 모노타이프로 만든 텍스처를 넣기도 합니다. 여러 조각들을 한 종이 안에 모으는 일은 기억과 감정의 조각들을 선별해서 이어 붙이고 편집하는 일과 같았어요. 직면하기 힘들었던 ‘엄마의 죽음’이라는 한 사건을 내가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일지를 좀 더 주도적인 관점에서 선택할 수 있게 된 계기가 되어주었습니다. 중요한 건 나는 앞으로 남은 생을 살아갈 거고, 그 생에서 나와 내 주변, 그리고 세상의 평온을 위해 어떤 이야기를 믿고 싶은지 그 자유와 선택권이 나에게 있다는 것. 상처를 입었더라도 또다시 나 스스로에게 사랑할 기회를 주는 것. 그래야 더 깊은 사랑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걸 이제는 알게 된 것 같아요.
2024 경기 청년 갭이어 프로그램을 통해 경기도 가평에서 ‘보늬밤북스’라는 1인 출판사를 창업하고, 브랜딩, 독립 출판하는 프로젝트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텀블벅에서 11월 30일까지 그림책 <가을이 오면> 펀딩을 진행합니다. 앞으로도 “다정하고 단단하게” 독자님들의 마음을 수호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만들어가겠습니다. 저의 첫 전시보러 와주셔서 감사드려요.
2024년 늦은 가을, 보늬 드림.